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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재회/1분칼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외로움을 극복할 수는 없다

외로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별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원나잇이면 12시간 뒤 이별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짧게 사귀면 3달 뒤 이별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길게 사귀면 5년 뒤 이별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결혼하게 되면 50년 뒤 이별한다.

 

남녀 사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주변의 모든사람과 하나 둘 씩 이별하게 된다. 이것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이별이 두려워 그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간 자기 자신과 이별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록 슬프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안다. 그래서 외면하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우리는 깨달하야 한다. 외로움은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세월 앞에서 독안에 든 쥐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별의 슬픔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인연을 맺으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의 이별이 두려워 이별보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 깊은 연애를 하면 어떨까?

 

인터넷에서는 남녀가 함께 늙어가는 것에 대한 미화가 많이 되어있는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늙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은 막을 수 없다. 이별의 슬픔은 애써 외면할 수 있지만, 늙는 것에 대한 슬픔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사실 이별에 대한 두려움,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거대한 세월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 자신의 소멸성이 두렵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것은 거대한 세월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같다.

 

 

 

그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

 

때로는 어떤 사람을 보면 참 멋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이 잘생기고 몸이 좋고 그런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런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이것이다. 그 사람들은 늙음, 이별에 대한 슬픔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슬픔을 감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슬픔 위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이 세상에 남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태도를 동시에 나타낸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존경하게 되어 있다. 앞서 얘기한 인간 내면 저 깊은곳에서부터 '두려움'과 그에 반작용인 '정신적 안정감 욕구'가 동시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사람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할지 모르나 거대한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또다시 외로워지게 되어 있다. 지금 작은 외로움들을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어서 더 큰 외로움 앞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지 말고 지금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방법들을 찾아나가는게 어떨까?